아직도 난 누군가와 논쟁하기를 좋아한다.

서른을 막 넘길 무렵.
계절을 한 번 돈  군인의 두번째 봄처럼,
인생은 몇개의 손에 잡힐 듯한 법칙으로 돌아가는듯
모든게 익숙하고 예상가능해 보였다.

나름 명확하게 줄을 그어온 정리 들은
난발된 공리 였고 허공에 뿌려진 먼지였다.

그것들은 사진관의 잔치상에 두껍게 놓여있다.



어느 순간 부터 인터넷에 리플을 다는 것에 조심스러워 졌다.
사실 조금은 욱 하는 성질 있고....나름 삐뚤하면 한 삐뚤이라 뭐 같지도 않은 글조각 나부랑이들 썰어논 꼴을 보면 한 마디 꼭 붙여야 한다.

그러다 몇년전에 정말 몇날 몇일을 인터넷 댓글로 싸운 적이 있다.
지금은 알만한 사람 알만한 하드웨어 사이트에 어느여자가 그런 나의 심기를 건디리는글을 올렸다.
아침에 별 생각 없이 날선 댓글 하나 남겼더니..저녁에 와 보니 장문의 사설로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였다.
나 또한  몇 페이지가 넘는 글로 응수 하고. 주제가 나름 무거웠는지라 도서관서 자료찾고 주변전문가 인맥 뻗어 있는 지식 없는 지식 갖다 쳐발라다 전포일제사를 날렸다..

그러기를.4일..밤낮.

사이트 회원들도 덩달아 양편으로 갈렸고...내심 평정을 잃지 말자 노력으로 결국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상대를 보며 ..또 그에 발광하는 나를 보며 좀 한심하다는생각이 들었다.
결국 온라인 상의 글이란 상대가 아무리 글을써도 자기눈에 편한 단어만 눈에 읽히기 쉽상이고
훈련되지 않은 언어 전달력이란 처음 부터 비극이거나 무관심일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경우도 있는데,
우연히 내 아이디로 검색을 해봤을때 였다.
잊고 지내었던 무심히 남긴 내 글들이 내 뜻과 다르게 전달되어 공공의 적으로 유린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나름 리플을 다는 법칙이 있다.
1. 아침에는 리플을 달지 않는다 (예전 사건때문이기도 하지만...아침에 유난히 까칠함 ㅡㅡ)
2. 개인에게는 칭찬의 리플꺼리만,,,단체만 비판하기.
3. 리플시 실명이름을 쓴다

4. 정말 열받으면 쉐도우 리플 달기,,
 정말로 열받고 ㅆ 욕 나올 일이면 실컷 악플달고 "확인" 버튼을 누르지 않고 F5(새로고침)을 눌러 버린다.
 당나귀를 숲에서 혼자 외쳤던 어느 이발사 처럼 순간적인 스트레스를 풀면서도 지저분한 뒷처리가 안남아서 꽤 유용한것 갈다.
하루에도 수십 페이지의 남의 인생을 읽는다.
신문에서 모니터에서 책에서

나에게 주어진 분량은 A4 한 장.
이 한장의 분량에 학교 졸업후 살아온 이야기를 쓰는데
나흘 밤 낮이 걸렸다.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막막한 적이 없었다.
커다란 냉동 고기덩어리를 자르기 위해
과도를 들고 설치는 것 처럼 그 어디 부터 칼집을 내야 하는지,
손끝 부터 머리까지 석화가 되버린 느낌.

실타래 풀려 쏟아내기 시작하면
보기 흉하게 망가져 버릴 것 같아 망설이게 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생각하면
쓸게 없고..
 
아디다스 광고에 나오는 애들은
칠판앞에서 마커팬 하나 갖고
'내 이야기 좀 들어 볼래..?" 하면서
술술 나오던데.

난 안 그렇더라.




군대, 무기, 물,흉칙한 물고기..윽박,폭력.시간의 촉박함.
두세시간 이런 것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것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조합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너무나 잘 기억난다. 어제것도. 그제것도. 몇 해전 전 꿈도...
다만 그것이 시간의 축에 일대일  배열이 되어있지 않을 뿐이다.

나에게 악몽이란
케이블티비의 대출,보험 광고와 같아서
영화의 나머지를 보기 위해
이십여분동안 감내해야 하는 불쾌와 불안의 시간이다.

넌 곧 죽을 것이니..
세상에 댓가를 치를준비를 하라.

악몽,보험,사채..한 통속이다.



처음에 시집을 받았을때 '어렵다' 했다.

하지만 이해 하게 되면 더 나은 사람이되겠지 했다.

세상을 한참 등지고 혼자서 모퉁이 보고 서있을때면 어디선가 심장을 쥐어잡고

머리채를 뒤로 잡아채는 글을 마주 할 때가 있다.


누구의 글일까..

또 그 사람의 글이다.

한 번도 끝까지 읽어본적 없는 그의 시는 모두 다 알것 같다..

책상의 한 귀퉁이에서 , 여행 가방 쪽주머니에서 , 자동차 다찌방에서 .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항상 날 주시하는 그 책은  날 방관하지않는다


어제도 마주친 글귀하나.... 아직도 숨이 차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기형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래 오래 살아



가끔 놀러가는 방송국에 근무 하는 선배 스튜디오에서 발견한 컴퓨터 입니다.
방송국이야 언제나 육중한 장비와 긴장감 가득찬 공기에 주눅이 드는 곳이여서 그런지..
구석에서 조용히이 가구처럼 놓여있는 이놈을 발견한건 얼마전입니다.

"형..이거 혹시...컴퓨터?."
"어? 어..그거..응 386이야.."
"엥???? 386이 아직도..? 어..정말이네 여기 터보 스위치랑..클럭수 40...우오오"

그렇습니다. 90년대 초반 온갖 컴터 잡지책에 화려한 표지모델로 . 슈퍼, 울트라,스피드,기적.등등의 수식어의 주인공으로 활동하던 386컴퓨터 였습니다. 게다가 터보 버튼을 누르면 무섭게 속도가 40h로 속도가 치솟아 버리는 기능까지 겸비한..

하지만 녀석의 존재감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거...올해로..그니깐...12년 동안 한 번도 꺼진적 없어..."
" -_-;; 설마...리부팅도안했다고?" .
"응.."

무려 12년 동안 꺼지지 않고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는 386 입니다.
그 아래 보면 아마 당시 세트로 구입했을것 같은 도트 프린터도 보입니다.
이 두넘의 사진을 담고 나니 손때 간간이 붙으면서도 결코 험해보이지 않은 모양세가
마치 노년의 금실 좋은 부부를 보는듯 합니다.

쿼드코어에 수냉,유냉, 솔리드 콘덴서..등 요새 컴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 없는
엄지 손톱만한 방열판이 다 인 컴퓨터 이지만...펜소리 하나 없이 12년을 제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경외감이 드네요.
부디 오래 오래 장수하길..

이 많은 활쓰기중에 이제 보니 내가 할 줄 아는것은 데타셰와 구분이 안가는 레카토 밖에 없네요. 언제 현란한 살타토를 해볼까나..


Detache(데타셰) : 음을 분리하여 압력을 바꾸지 않고 항상 부드럽게, 균일하게 켜는것
Martellato(마르텔라토) : 스타카토보다 더 날카롭게 끊어서 연주
Legato(레가토) : 음과 음 사이가 부드럽게 연결되도록(끊어지지 않게) 연주
Staccato(스타카토) : 음을 확실하게 끊어지도록 활을 멈춰서 연주
Saltato(살타토) : 활을 현 위에서 뛰듯이 퉁기는 연주(스타카토는 활을 멈춰 음이 끊기지만 이 경우는 약간의 자연스러운 울림을 여운으로 남김.

스피카토(spiccato) : 활털의 탄력을 이용해서 활을 튀어오르도록 연주
피치카토(pizzicato) : 오른손으로 줄을 튕겨서 연주
콜 레뇨(col legno) : 활털이 아니라 활대로 연주
술 폰티첼로(sul ponticello) : 활을 브릿지 가까이서 쓰라!



왜 집오리는 날지 않을까, 기러기목에 속하는
우아하고 튼튼한 날개를 접어 퇴화시키며
저 넓고 푸른 하늘의 자유를 포기한 채,
일용할 하루의 양식을 위해
도시의 더러운 시궁창에 거룩한 황금색 부리를 묻는
날지 않는 새, 집오리

시립 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처럼
TV앞에 침묵하는 우리들처럼
스포츠에 거세당한 이 시대처럼
날지 않는 집오리여, 너는 새다

길들여진 관습과 타성의 질긴 그물을 찢으며
빈 발목을 죄는 불안한 시대의 불안한 생존,
사육의 쇠사슬을 풀고, 혁명하라
날아라 집오리여, 새여

달 밝은 우리나라의 가을밤
기역자 시옷 자로 무리지어 힘차게 날아가는
쇠기러기, 청둥오리 떼를 따라 우리 다 함께
무서운 무리의 힘으로 힘차게 날갯짓하며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유의 하늘로 푸른 하늘로

정일근

뒤늦게 시작한 성인 연주자를 위한 교수법

자료출처 : 스트링 앤 보우



노르웨이의 타르예 모 한산(Tarje Moe Hansen)은 20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영감에 가득 찬 이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들은 개개인의 자기분석 및

자발적 실험과 발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어른들이나 뒤늦게 바이올린을 시작한 초보자들도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린 신동들과

마찬가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앤 잉글리스(Anne Inglis)가 그를 만나보았다.


나 자신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성인 제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스승을 만나 보는 것은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타르예 모 한산(Tarje Moe Hansen)이 성인 제자들을 발굴해내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그들의 잠재력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의 다음 혁명은 보통 수준의 성인 음악가들이 대거 양성되는 데 있다' 고 예견했다.

여느 음악원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재능이 번득이는 십대 제자들을 다수 가르친다.

하지만 자신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그로서는

여러 연령층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양 행동하지 않는 대신

제자들과의 교류를 무척이나 즐긴다. 그도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하긴 하지만,

이를 꾸준히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또한 지니고 있다.

사실 모 한센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학습방법에서 각각의 묘책들을 취하고

이들을 주의 깊게 분석한 뒤 효용가치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아마추어 바이올린 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난 모 한센이 청소년기에 쌓은 실제 연주 경험은

팝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한 것이 전부였다.

그가 20세 때, 그의 아버지가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의 소리를 평가하기 위해

그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는데 왼손잡이인 모 한센은 악기를 집어 들자

오른쪽 어깨에 얹고는 몇 음을 그어보았다. 이 새로운 시도의 가능성에 힘입은 그는

동네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의 도움으로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방법, 즉 바이올린을 왼손으로, 활은 오른손으로 잡는 방법을 시도했으나

별 신통한 진전이 없자, 그는 이를 포기하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다.

그 후 단 3개월 만에, 그것도 왼손잡이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는 오슬로 음악원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연주자들을 왼손잡이로 연주하게끔 운명 지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대체해법을 가진 선생으로서 나는 그것이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물론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때라면 실제적인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겠지만,

현악 4중주의 경우에는 이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인 방법이 되죠.

두 바이올린 주자가 서로 반대편에 앉아서 동시에 청중을 바라보며 연주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몇 년 후 좀더 가르침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고

런던의 카토 하바스(Kato Havas)에게 지도를 받게 된다.

노르웨이로 돌아오면서 모 한센은 외부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내부를 감지해내는 통찰력을 얻고자 주력했다.

물론 당시의 나는 대안에 관한 이러한 탐구 과정이 결과적으로 바이올린 연주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10년간의 연구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가 왼손잡이이기 때문에

자연히 여러 가지 다른 해결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나는

관습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열어 적극적으로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지요.


모 한센은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닥치는 대로 읽고 연구했으며

자신이 고안한 모든 방법들을 시험해 보았다.

그는 또한 즉흥연주를 연습하는 동시에 지판 전체를 통해 특정한 패턴의 음렬을 연주하는

편안한 방법을 찾기 위해 해부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성인 연주자들은 반드시 그들 자신의 독특한 배움의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어린 아이들도 세브직을 연주할 수 있지만 어른들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서

영감을 얻은 실험과 분석을 통해 스스로가 자신의 세브직이 되어야만 하죠.

마지막 조율은 개개인의 몫이며 우리는 각자 자신들의 연주에 있어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와 분석은 강한 테크닉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끝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이 같은 자세는 모 한센을 스승의 길로 이끌었다.

학생들은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들고 그에게로 모여든다. 모 한센은 현재 개인지도와 함께

노르웨이 스테이트 아카데미에서 고급반 연주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물론 그도 자신의 제자가 메이저 경연대회에서 성과를 올리거나,

오케스트라의 좋은 자리를 차지했을 때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가 보다 기뻐하는 일은 그의 늦깎이 제자들이 그들의 악기와 사랑에 빠져

운명적인 음악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기존의 악기 교수법은 10세만 되어도 악기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고 간주하지만

모 한센은 `늦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란 결코 없다' 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야 바이올린을 시작한 모 한센이 악기 연주에 있어

기존의 교습법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모 한센에게 바이올린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끝없이 그의 넋을 홀리는 매력적인 존재다.

바로 이런 악기와의 `친밀감'이 그가 성인들에게 전하려고 애쓰는 부분이다.

또 성인들에게는 전통적인 교습방법이 별로 만족을 주지 못하는데, 이것은 교습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어른들의 사고엔 별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성인들의 경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 앞에 놓여진 시간이 그리 길지만은 않다.

당신이 스무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다면 무척 빠른 속도로 학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라고 그는 단언한다.

 

우리는 늘 `선생님 말씀이 정답'이라는 고정관념에 길들여져 있으며,

그 밖의 다른 길에 대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인 음악가들도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고 있지요.

그 한 예가 성인들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모방을 통해 배워간다면 성인들은 그들만의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갈 수 있죠.

성인들에겐 이러한 독창성의 연마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 한센에게 있어서 `정신적 훈련' 이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그는 연주자가 6시간 동안 바이올린에 대해 `사고'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단 10분의 연습만으로도 6시간의 연습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고 단언한다.

 

또한 그는 성인들도 언제 악기를 시작했건 간에 어린 학생들과 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음악가가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어쩔 수 없는 타성에 묶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어릴 적 배웠던 전통적인 테크닉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교수들도 새로운 실험과 개개인의 해법탐구를 장려하기보다는

그저 유능한 선생이 되는 일에만 급급해 하고요.

 

모 한센의 성공이 그에게 내재해 있던 뛰어난 재능의 산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가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발견하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과 다양한 접목행위의 시도가 필요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그에게 문제해결의 열쇠는 연습곡과

스케일 사이를 메워주는 훈련도구가 없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이러한 갭은 20세기에 작곡된 곡들의 연습에 있어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모 한센은 지판의 활용법에 대해 명쾌히 밝혀주는 학습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사실에 대한 증거로,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라도-그가 얼마나 악기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가와 관계없이-새 악기를 보여주었을 때, 제 2포지션과 제 3포지션 사이에서만

악기를 시험해 본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바로 다음 음정과의 간격이나 동일 포지션 내에서의 음 간격은 플레쉬, 크로이처 또는 세브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훈련이 가능하지만, 매우 높은 포지션에서의 연주 혹은 간격이 큰 음 사이를 건너뛰거나

자유로이 음을 연결함에 있어서는 숙련된 연습 벌레들이라도

그리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모 한센은 이것을 `안전 재대에서의 안주'로 간주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이하다거나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긴장이나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간적 반응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그러한 안전지대에 지속적으로 머물고 싶어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전통적으로 장조와 단조에 바탕을 둔 제한된 접근법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므로,

특정 패턴을 따라 구성된 음렬의 훈련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대작이나 현대작품의 훈련에 적합한 다양한 연습 방법들을 계발해냈다.

이 연습들은 항상 사용되는 피치와 음정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각각에 모두 동등한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지판을 완전히 익히리 수 있게 해 주지요.


모 한센의 두 번째 저서는 지판 위에서 궁극적 정확도를 달성하고 독보력을 향상시키며

새로운 작품을 빨리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음정간의 간격과 위치의 이동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저서는 밸런스와 동작과 호흡에 중점을 두었다).

 

`유럽 현악기 교사 협회' (European String Teachers Association)의 후원으로 열린

근자의 주말 공개 레슨에서 모 한센은 지판 위에서의 자유분방한 움직임과 정확한 터치 및

정밀한 음조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의 연습법은 절대음감 혹은 잘 다듬어진 상대음감이 없는 이들로서는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어려운 음 간의 도약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활의 사용을 특정부위로 제한한 가운데 음 간격을 훈련하는 방법으로

워밍업을 시작한다. 이는 마치 누군가가 지판의 도면 위에 자로 잰 듯 점을 찍어 넣는 작업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모 한센은 이 `도면'을 음의 정밀성 및 안전성의 열쇠로 간주하고 있다.

그의 몇몇 연습법은 현의 중간과 가장 끝점들 사이를 오가는 것이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참가자들은 보다 쉽게 음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음정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비브라토다. 모 한센은 비브라토 스케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세히 들어보았을 때 비브라토는 언제나 일정해야 한다.

손가락을 아래로 내린 상태, 뒤로 물린 상태, 그리고 그 중간 상태에서

모두 비브라토를 연습하도록 한다' 고 말한다.

그는 특히 비브라토의 타이밍과 조절을 강조하는데,

손가락들은 언제나 빨라지려는 속성이 있으므로 그것을 늦추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최소한의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 파가니니 카프리스를 잠시 연주해 보였다.


모 한센의 지적에 의하면, 때때로 비브라토의 문제는 활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줄을 바꾸는 연습, 활의 독립된 파트를 사용하는 연습과 아울러

활의 에너지를 비브라토에 실어주는 훈련을 행하도록 권고한다.

그는 `온활에서의 빠른 비브라토는 매우 어렵다' 고 이야기하면서

비브라토의 여러 속도 변화를 보여준 뒤 곧바로 브람스 소나타 G장조의 첫 부분을 연주했다.

그는 레슨 내내 자신이 알려주고자 하는 사항에 매우 적합한 레퍼토리를 사용함으로써,

그야말로 조금도 낭비가 없는 효율적인 학습을 이끌었다.


모 한센은 공개레슨의 마지막 날, 몇 명의 참가자들을 선택하여 각자에게 적합한 발의 위치,

머리의 자세 그리고 팔과 손의 각도 및 활의 압력을 조정해 주었다.

한 연주자는 그의 레슨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가 그토록 짧은 시간 내에 각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다시 말해

악기에 담긴 영혼을 발견해 낼 수 있게끔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의 가르침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 한센과 같이 왼손으로 활을 잡기를 원하는 이들의 필수과제는 바로 악기를 구하는 일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악기에 대한 수리작업이 필요하다.

그의 악기는 노르웨이의 올 페르디난트 스토른(Ole Ferdinand Storn)이 제작한 것이다.

스토른은 원칙적으로 기존 악기의 베이스 바와 사운드 포스트의 자리를 바꾸고

간단히 두께만을 조절해 주는 단순개조작업에 극구 반대한다.

그는 기존 악기와 반대되는 바이올린으로 개조할 뿐 아니라

악기 몸체의 음향점 위치를 조절해 준다. 스토른은 음향학 및 전파학의 전문가이자

바이올린 제작자인 헤롤드 룸트(Harold Lumd)와 함께 만들어낸 두께조절법을 매우 중시한다.

어떤 부분은 보통보다 약간 두껍고 또 다른 부분은 보통보다 약간 얇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러한 양극간의 차이는 엄청나나 것입니다.


모 한센의 가르침 중 많은 부분은 관습적인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연주와 연습에 있어서 개인의 창의력을 일깨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나는 전통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어떻게 하면 전통을 보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배움에 있어서 당신 스스로가 창조해낸 모든 것들은 보다 긴 생명력을 갖습니다.

우리는 모두 `선생님의 말씀이 정답'이라는 고정관념에 발목을 잡혀있지만,

연주는 바로 우리 자신의 실험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해요.

우리는 성인으로서 새로운 `개척자'가 될 필요성을 지닌 것입니다.

 

앤 잉글리스 글/유승연 옮김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그것도 카페인 걸죽한 벽다방 자판기 커피아니면  도저히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타입이다.
빠르게 두세모금을 한번에 빨아들이고 온몸에 가벼운 각성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그제야 내 몸이 부팅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카페인으로 몸이 정상 상태 보다 더 긴장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카페인으로 그제야 정상으로 돌아 온다는 사실이다.
어째든 무언가 시동이 걸리고 의욕이 올라가는 짧은 경험, 그 변화과정을 즐기는 편이므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사실 이 보다 좀더 심각한 중독 증세가 있는데, 바로 운동중독이다.
군제대후 아버지 따라 다니기 시작했던 웨이트가 한두해 지나가다보니 이제 습관이 되버렸다.
그렇다 습관이다. 사실 제대로 했다면 4월초반인 지금에도 쫄티를 입고 싶었을 것이지만...
난...스웨터를 입는다 ㅡ.ㅡ
제대로 만들어진 몸을 허락하지 않은 그 습관은 근육에게는 젖산연소의 쾌감을,
 두뇌에게는 도파민의 달콤만 맛만 남겨주어...흡사 사카린에 맛들린 초딩학생의 불량식품 입맛처럼 되어버렸다.

증세는 이렇다.
삼사일 정도 운동을하지 않으면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인내심이 줄어들고 짜증이 는다..
그러다 일주일 쯤 지나면 거의 패러노이드 환자가 된다.
누군가 내몸을 뒤에서 꼭 감싸고 누르는것 처럼 근육이 수축되는 느낌을 받고 머리는 잠을 못잔 상태처럼 지끈 거린며 눈은 따끔 거린다.
그럼 운동을 하면되지 않는가? 문제가 간단치 않다. 일단 바쁜 일상이 일차 걸림이고 두번째는 같이 찾아오는 가벼운 우울증 증세이다. 만사가 귀찮고 하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제때일처리를 하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한 정신적,시간적 스트레스는 운동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운동을 하지 않아 생긴 상태이지만 그결과로 운동하기 어려워지는게 가장 힘든점이다.

그렇게 하루가 더 흘러가면...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 무슨수를 써서라도 운동을 하러간다.
거의녹초가 될때까지 하게되는데 그 쾌감은 몇일전의 고통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모든일에 자신이 생기고 낙천적이게 된다.

어제 마라톤도중 급사사고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나의 굴곡있는 일상의 패턴이 생각났다.
일상의 운동이 아닌 중독의 운동은 분명 어딘가 균형이 깨진  일방적인 소비인 것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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