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詩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절차탁마(切磋琢磨)에 힘쓰려고도 하지 않았다네. 그렇다고 속인들과 어울려 잘 지냈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네. 이 또한 나의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 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나보다도 훨씬 모자라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것을 갈고 닦는데 전념한 결과 당당히 시인이 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호랑이가 되어 버린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회한을 느낀다네.(44~45쪽)”

- 산월기-

그들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 들이며, 거부감이 만큼은 아닌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상당한 사회의식을 갖은 양심적인 시민들이다.


그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과 짐짓 긴장과 갈등 벌이며 먹고사는 일에 메달려야 하는 대다수 인간들과는 달리 시민으로서 양식을 충분히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 변화 되어야 될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런 변화를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노력은 대게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대를 추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의 근본적 변화를 쫓는 노력을 '비현실적' 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실현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 회복' 따위의 간편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인민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을 혐오하지만 양식과 윤리로 무장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예수전



분노의 촛점은 대리투표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미약한 국민은 동영상 퍼 날르는 일 밖에 할 일이 없네요.

위 영상이 남의 모니터 대신 닦아 주고 있는 건 아니겠죠?
사실 그 보다 더 한 억지도 부릴 수 있는 인간이하의 것들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항상 역사적 발전이 가정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에 저런 사람들을 의원으로 만들어 준 국민들 ! 정신차립시다.

(친절한 다음씨께서 동영상을 차단한 관계로 유투브 버전으로 올립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청춘의 문제는 불그레한 양 볼, 붉은 입술과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의지와 상상력의 질과 감수성의 왕성함이다.

청춘은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신선함이다.

청춘은 안일에의 안주를 떨쳐버리는 모험심을 위하여

희구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용맹심이 개성적으로

우세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종종 스물 살의 청년에게 보다 예순의 어른에게 보다 많이 존재한다.

아무나 나이만 많다고 하여 늙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팽개침으로써 늙는다.

나이가 들면 피부에 주름살은 지기마련이나,

그렇지만 정신은 열정을 포기함으로써 주름이 진다.

걱정, 두려움, 자신감을 상실함으로써 용기를 잃고 기백마저

꺾이고 만다.

 

나이가 예순이든 십육 세든 여하간에,

사람의 마음속에는 경이로움, 미지의 것에 대한 어린이 같은 무한한 욕구,

그리고 삶이라는 게임을 즐기려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과 나의 심중에는 무선 송수신소가 있어서

아름다운 것, 희망, 격려, 용기와 힘에 대한 메시지를

인간과 하나님으로 부터 수신하는 동안에는 그 동안  만큼 당신은

젊은 것이다.

 

안테나가 세워지지 아니 하여,

당신의 정신이 눈처럼 쌓인 냉소주의와 어름처럼 찬 염세주의로

덮여있을 때에는 비록 나이가 스물 살이라도 당신은 늙은 것이다.

그러나  안테나가 세워져 있어서,

낙관주의에 관한 전파를 수신하는 동안은

당신은 여든의 나이에서도 젊게 살다가 임종할 가망이

있는 것이다.

문제없다.
충분하다.
절대 문제없다.
단호히 대처하겠다.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국민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
소통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전달과정상에서 문제가 있었다.
언론 보도가 착오로 잘못나갔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단순 실수다.
사실무근이다. 아직 결정된 바 없다.
브리핑 과정상 약간의 말 실수가 있었다.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집단이 있다.
야권이 브리핑 내용을 악의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국민뜻 거스르는 일 계획한적 없다.
이번 정책은 아직 청와대와 정부에서 검토된 바 없다.
근본 의도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국민 뜻 고려않고 강행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해명하겠다.
국민들 걱정 이해한다. 국민 민심 반영해 실수없게 추진하겠다.
경제 위기설을 이용하여 민심을 흔드려는 야당의 악의적 공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가며 신중히 검토하겠다.
언론사 측의 오보다. 언론사 측이 관련내용을 넘겨 짚은 측면이 있다.
일부 정부 관계자의 개인적인 사견을 청와대의 입장으로 확대해석하지 말라.
기탄없는 국민들의 관심과 격려와 충고에 감사드린다.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Learned Helpless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든 생물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외상적 경험을 하게되면 후에 이러한 외상적 경험에 대처하여 반응하려는 동기가 감소하게 되어 비록 자극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학습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정서적인 평형이 깨지게 되며 우울증과 불안이 고조된다.  반복되는 실패와좌절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어려운 환경이 원인이 아니라.

통제에 대한 무력감이다.


히틀러가 2mb처럼 대통령이 되었을 때.

처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때도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회주의자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노동운동가들을 잡아갔습니다.
나는 이때도 역시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카톨릭 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내 이웃들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잡혀가는 것은

뭔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내 친구들이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가족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나를 위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에밀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마틴 니묄러


후회는 한 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편지를 부치러 가는 오전에는 삐걱거리는 계단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누군가는 짙은 향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슬픈 일이었지만

오후에는 돌아온 편지들을 태우는 일이 많아졌다
내 몸에서 흘러나간 맹세들도 불 속에서는 휘어진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불꽃이 '너에 대한 내 한때의 사랑'을 태우고
'너를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나'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

내가 건너온 시장의 저녁이나
편지들의 재가 뒹구는 여관의 뒷마당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향해 있는 것들 중에 만질 수 있는 것은 불꽃밖에 없다
는 것을 안다 한 평생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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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이 내 육신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정신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암이란 진단을 받기 전의 나는 대단한 게으름뱅이였다.
100%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도 상당한 액수의 월급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내게 다시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정말 올바르게 살겠다고.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2.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면서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깨달음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면, 매일 아침
신선한 기분으로 깨어나 내게 특별한 또 하루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활기차고 목적 의식이 뚜렷한 하루하루를 이어가자고
다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가 내게 오로지 사이클에만 매달려 장대비 속에서도 여섯 시간씩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게 바로 내 대답이다.

#3.
누가 내게 묻는다면 인생이란 거짓된 한계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운동선수로서 내게 던져진 도전의 과제는
사이클을 타고 그 한계를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병상에서 그 한계를 시험해보는 것은 한 자연인으로서의
내게 주어진 도전의 과제였다.
암은 누구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도전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의 도전 과제였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건 나로 하여금 높이 뛰어올라
그 장애물을 넘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4.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세상을 보는 관점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내가 하는 선택이다.
결정은 바로 내가 하는 것이다.

#5.
세상에는 자신감을 사거나 조작하려는 사람,
또는 그런 체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자신감을 거짓으로 꾸며낼 수가 없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내게 그 방법을 묻는다면,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하겠다.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노력해야 한다.
2003년 뚜르 드 프랑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온몸을 부숴버릴 듯한 노력과 함께...

#6.
1999년 내가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전혀 미스터리도 아니었고 기적의 약물 때문도 아니었다.
다른 선수보다 치밀한 훈련과 테크닉의 힘이었고,
투병 경험과 그에 버금가는 희생의 대가였다.
내가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나고 묻는다면,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다.
누구든 큰 일을 이루겠다는 야망이 있다면,
강한 의지와 사소한 부분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주의력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큰 일을 이룬 위인들을 쭉 살펴보라.
어떤 이들은 카리스마가 있었고, 어떤 이들은 없다.
어떤 이들은 키가 크지만 어떤 이들은 작다.
어떤 이들은 뚱뚱하지만 어떤 이들은 호리호리하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어떤 어떤 한 가지 일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집중력이다.
1999년 이후로 나는 오직 하나, 뚜르 드 프랑스에만 전념했다.
개인적은 도전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우리 팀 전체를 위한 객관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레이스는 나 아닌 타인을 물리치는것이라기 보다는
나 자신을 경쟁의 상대로 삼는 일이다.

" 나는 점점 더 나와의 경쟁에 익숙해졌고 전보다, 작년보다,
지난달보다, 아니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레이스를 하게 되었다.

#7.
고통이 주는 진짜 대가는 이런 것이다. 바로 자기 인식, 자각이다.
그러나 고통 앞에서 포기한다면 고통은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항복이라도 그 고통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된다.
포기하고 싶을 땐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고통과 평생함께 살고 싶은지 고통 아닌 다른 것과 함께 살고 싶은

헨리 조지 - 진보와 빈곤중에서.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덕·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중략)…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전락한다.


…(중략)…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지은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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