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간의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했던 때의 일.
우주비행사들이 무중력 상태에서 볼펜을 쓸 수 없어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것.
볼펜은 잉크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내려오며 펜 끝의 구슬을 적셔 글씨가 써지는데 무
중력 상태에서는 잉크가 흘러내려오지 않으므로 글씨를 쓸 수 없는게 원인.
NASA는 곧바로 우주공간에서도 쓸 수 있는 볼펜 개발에 착수했다.
백만달러를 들여 개발한 이 볼펜은 무중력상태에서도 어떤 표면에서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소련은 연필을 사용했다.
이 이야기는 발상의 전환을 못하고 돈만 쓴 낭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알려져 있지 않고 있죠.
그러나 이 다른 숨겨진 이야기는 분명 우리에게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교훈이 들어있
을 겁니다.
먼저 이야기의 발단은 미국의 우주인들도 1960년대에는 소련 우주인들처럼 연필을 썼
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연필은 우주 공간에서 문제를 가졌습니다.
부러진 연필촉은 무중력 상황에서 좁고 여러가지 장비들로 가득찬 우주선 어딘가로 갈
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고작 부러진 연필심 토막으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기분나쁜 일이겠죠.
그래서 NASA는 부러지지도 않고 우주공간에서 부담없이 쓰는 펜의 제작을 의뢰합니다.
네바다주의 필기구 업체였던 피셔(Fisher Co.)사는 NASA의 의뢰에 따라 앞으로 우주펜
(Space Pen)이라 불릴 새로운 볼펜을 만듭니다.
1965년, 완성된 피셔 우주펜은 특허를 받고 곧 NASA에 개당 30달러정도의 가격에 납품
됩니다.
그때 일반적으로 사용된 볼펜심은 내부에 작은 구슬이 들어가고 그위에 끈적이는 잉크
가 들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나미 153같은 볼펜도 마찬가지)
잉크는 구슬에 묻고 구슬이 종이위에 구르며 잉크를 바르게 되며 글이 써지는 것이죠.
우주펜은 더욱 끈적거려 젤리에 비견되는 특수잉크를 사용합니다.
잉크가 든 카트리지 내부에는 압축가스를 채워 잉크가 구슬쪽으로 밀리게 만듭니다.
볼은 점성이 더 큰 잉크를 효과적으로 묻히기 위해 표면에 작은 구멍들이 나있어 마치
골프공처럼 만들어집니다.
잉크는 구슬 표면의 구멍에 묻은 채로 구슬이 구르는 대로 깍여져 나가며 종이에 쓰여
지게 되는거죠.
당시 골프공 모양의 작은 구슬을 만드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부가적으로 잉크는 어떤 표면에서도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특성을 가졌고 덕분에 우주
펜은 물속에서도 유리나 기름묻은 표면에도 필기가 가능하다고 말해집니다.
또한 온도차가 심한 곳에서도 제 역활을 다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주펜은 판매됐고 사용됐으며 그걸 만든 피셔사는 여전히 이런 볼
펜을 만들며 장사중입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재미가 전혀 없을 겁니다.
수집가들이나 좋아할 기술적으로 멋진 그러나 낭비였던 사례에서 벗어나긴 힘들테니까
요.
촛점은 어떤 곳에서건 쓸 수 있다는 것에 맞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건 쓸 수 있다는 것은 필기구로서는 꿈에 가까운 일입니다.
어떤 종이건 유리건 물속에서건 극한이건 사막이건 간에 글이 써지는 볼펜은 충분히
시장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더불어 관련 기술은 다른 필기구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합니다.
피셔사가 그들의 볼펜으로 얼마를 벌어들였는지는 그 회사의 사정이니 무시하죠.
다만 지금 문방구로 달려가셔서 세라믹 펜이니 젤러펜이니 하는 잘팔리는 필기구를 하
나 뽑으셨다면 혹은 지금 그걸 쓰고 계시다면 거기에 우주펜의 기술이 모두 들어갔다
는 점만 아시면 되겠습니다.
단적으로 세라믹 펜으로 국내에서도 아주 잘팔렸던 필기구는 묽은 수성 잉크를 효과적
으로 쓰기위해 골프공같은 표면을 가진 구슬(바로 우주펜에 사용됐던)을 채택합니다.
매끈한 구슬이었다면 수성 잉크는 점성 부족으로 끊어져 버리니까요.
이건 아마도 세라믹 펜이란게 처음 나올 때 선전문구를 유심히 보셨던 분이라면 기억
이 나실 겁니다.
지금 판매되는 젤러펜이니 뭐니하는 젤리와 같은 잉크를 쓰는 필기구들도 마찬가지입
니다. 말하자면 우주펜의 저가모델인 셈입니다.
그게 일제건 국산이건 간에.
특허를 가진 것은 피셔였다는 점만 여기서 다시 상기하면 되겠습니다.
일견 돈낭비 같은 일은 그 투자에 대해 충분히 보상했고 세계가 그 기술을 열심히 쓰
고 있습니다.
만약 그저 값싼 해결책, 그러나 문제점이 전혀 해결되는건 아닌 임시방편에 가까운,에
집착했다면 저토록 단 열매는 결코 맛보지 못했을 겁니다.
값싼 임시방편도 중요하지만 고되고 어려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시못하게
중요합니다.
과연 지금 개개인 혹은 더 크게 우리란 공동체는 어떤 해결책에 집착하고 있을까요?
제가 느끼고 드리고 싶은 교훈.
1. 값싼 임시방편을 좋아하지 마라.
근본적 문제 해결이 아니다.
2. 기술-연구 투자 좀 하자.
3. 마음에 안들면 꾸준히 개선하자.
그냥 대충 쓰면 되지 하고 넘어가지 말고.
더불어 불만과 개선책이 스스럼없이 서로 교환되고 해결되는 풍토 좀 만들자.
디펜스코리아의 문제중년님 글.